성당과 시장 리뷰
모든 사람들이 개발자일 필요는 없지만, 코드를 들여다 볼 줄 알면 적어도 손해 볼 일은 없기 때문에 전공이 아니더라도 소프트웨어 개발 학습을 권장 한다. 코드는 컴퓨터와 소통을 하기 위한 언어이자,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에릭 레이먼드의 성당과 시장은 사회초년생이었던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인터넷 기반 기업들의 주가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거품이 형성되었던 닷컴 버블 시기에 국내 기업들도 미래 먹거리를 위한 비전과 그에 따른 R&D 보다 단지 눈먼 돈을 벌기 위해 너도 나도 무리한 일정과 기능 검토 없이 프로젝트 수주와 기업 투자를 위한 임직원들의 월화수목금금금이 일상 이었던 2000년 당시 SI 신입 시절 한창 바빴을 시기였다.
연예나 취미도 모르는 집과 회사 밖에 몰랐던 내가 리차드 스톨만이 국내에 방한하여 연세대학교에서 강연한다는 소식에 지금은 아니겠지만 당시에는 업무 시간에 세미나 가는 것이 일반적인건 아니어서 월차내고 무슨 예긴지도 모를 GNU 에 대한 강연을 들으러 찾아 갈 정도 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직업에는 나름의 역사가 있고, 대부분의 경우 직업군에 필요한 기초, 심화 이론을 정립해둔 공학적 접근방식의 선구자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소프트웨어 공학에서 기억이 남는 선구자는 3명인데 놀랍게도 모두 2025년에도 현역으로 활동중이다.
만약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는 분들중에 다음의 3명의 이름을 처음들어 봤다면, AI와 구글 검색으로 재미있는 일화들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 Linux 운영체제의 커널과 Git 개발자 "리누스 토발즈"
- Windows 11 운영체제의 핵심인 NT 커널 개발자 "데이비드 커틀러"
- GitHub 의 오픈소스 윤리를 공유하는 "리차드 스톨만"
최근 100년 사이에 인류의 문명 발전은 인간에게 적응할 시간도 없이 너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앞으로의 세대들이 받아들일 지식의 양이 어마어마 하다는 것은 웬지 안타깝기 까지하다.
이 글은 내가 왜 개발이 재미있고, 오픈소스로 HandStack 을 만들고 공유하고 있는지, 오래전 읽었던 성당과 시장을 글을 다시 읽어보며 아직 읽어 보지 않았던 소프트웨어 개발자 분들에게 공유하고픈 내용과 나름의 첨삭을 해본 잠시 읽어볼 만한 추천글이다.
해커 문화의 짧은 역사
1960년대와 1970년대의 해커 문화를 형성한 프로그래머들은 MIT 인공지능 연구소와 같은 곳에서 활동하며, 유닉스와 같은 초기 운영체제를 개발하고, 아르파넷(인터넷의 전신)을 구축하는 데 기여한 인물들이다.
이 시기의 프로그래머들은 오늘날의 오픈소스 운동의 기초를 다졌다고 할 수 있다. 즉, 해커는 컴퓨터가 대중화되지 않고, 먹고 사는 게 힘들었던 시대에 컴퓨터 시스템을 능숙하게 다루고, 시스템을 개선하거나 혁신하며 얻은 지식들을 별다른 대가 없이 공유하는 소수의 엘리트 그룹을 일컫는 단어이다.
본래 "해킹" 이라는 의미가 해커의 일상적인 문제를 푸는 개인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에서 부터 시작되어, 그 문제가 많은 해커들에게 공감받고 해결책이 널리 퍼지게 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당시에는 얼마나 아름다운 활동이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해커 문화는 순수한 형태에서 시작되어 많은 프로그래머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나, 1980년대부터 소프트웨어 산업이 상업화되면서 많은 소프트웨어가 독점적으로 개발되고 배포되었고, 이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해커들이 자유롭게 소프트웨어를 수정하고 공유하는 문화를 약화시켰다.
그래서 몇몇 해커들이 값 비싼 소프트웨어의 정품 라이선스 기능을 무력화하여 재배포하거나 기업의 시스템에 침투하여 데이터를 훔치는 사건이 증가하면서, 정부와 기업들은 보안 강화를 위해 다양한 법적 규제를 만들고 해커 활동을 제한하며 일부를 범죄로 간주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대중들에게 점차 해커 문화의 순수성이 약화되고, 다양한 목적과 동기를 가진 사람들이 해커 활동에 참여하게 되면서, 인터넷의 보편화와 기술의 복잡성으로 인해 해커 문화는 더 이상 초기의 형태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향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마지막 해커 "리처드 스톨만"
1980년대에 소프트웨어 산업이 상업화되면서 해커 문화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을 때, MIT 인공지능 연구소에서 활동하며 현재 까지도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을 주도하는 인물인 리처드 스톨먼의 해커 정신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이로 인해 그는 종종 "마지막 해커"라고 불린다. (성당과 시장의 저자 에릭 레이먼드는 이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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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소프트웨어: 소프트웨어가 사용자에게 자유롭게 사용, 수정, 배포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그는 GNU 프로젝트와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FSF)을 설립하고, GNU 일반 공중 사용 허가서(GPL)를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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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와 협력: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서로의 코드를 공유하고 협력하는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소프트웨어가 독점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반대하며, 모든 사람이 소프트웨어의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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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 윤리: 해커들이 기술적 도전 을 즐기고, 창의성을 발휘하며,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해커들이 단순히 시스템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해커 정신은 오늘날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운동의 기초가 되었으며, 많은 개발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고, 다양한 프로젝트의 기본 사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리처드 스톨먼은 2006년 11월에 한국을 방문하여 연세대학교에서 GNU 프로젝트와 자유 소프트웨어, 그리고 GPLv3에 대한 최신 동향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 강연을 하는 것은 정장이나 격식을 중요하게 생각했었지만, 그는 청바지를 입고 강연을 했다. 그의 편안한 복장과 말투는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정신을 잘 반영하는 모습이었다.
그때 강연에 통역도 없고 영어도 몰라서 리차드 스톨만의 강연이 무슨 내용인지 잘은 모르지만 옆에 앉아 있던 외국 개발자가 GNU 를 한국 개발자들이 (지엔유)로 발음하는 것을 (그누~) 로 발음해야 한다는게 기억에 남는다.
초기의 공개 유닉스
1990년 초, 독점적 유닉스를 "해킹" 하려는 10여 년간의 해커 그룹의 노력이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 IT 업계에 공식적인 뉴스로 언급되며, 이제 개인의 기술 영웅주의가 끝났으며, 소프트웨어 산업과 초기 인터넷이 점점 더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거인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을 보도했다.
다행히 1993년 후반에서 1994년 사이에 언론과 해커 들 사이에서 눈에 띄지 않고 진행된 작은 일이 해커 문화를 아주 다른 방향으로 이끌고 생각지도 못한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그것이 현대 대부분의 IT 시스템의 근간으로 사용되는 리눅스이다.
1991년에 헬싱키 대학생 리누스 토발즈는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의 도구를 이용해 386 기계를 위한 공개 유닉스 커널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완전히 자유롭고 재배포 가능한 소스로 구성된 유닉스인 리눅스를 개발하는 것을 중점으로 진행했다.
당시 해커 들은 운영체제처럼 복잡한 소프트웨어는 비교적 작고 잘 구성된 엘리트 모임에 의해 주의 깊게 조정되며 개발돼야 한다고 믿고 있었는데, 리눅스는 처음부터 인터넷에 의해서만 조정되는 수많은 자원자에 의해 우연히 해킹되었다.
품질은 엄격한 표준이나 독재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매주 릴리스 되었고 며칠 안에 수백 명의 사용자(개발자)들로 부터 피드백을 받았고, 리누스 토발즈도 훗날 당시 주요 커널 소스코드를 이메일로 주고 받으며 수작업으로 일일이 코드를 병합했던게 제일 힘들었다고 언급하니 당시 그의 개발 방법은 기존 개발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발전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리눅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었다. 당시 국내와는 다르게 초기 리눅스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서 중요한 개념인 다윈주의적 적자생존의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는 단순하지만 파격적인 전략에 의해 개발자들이 지속해서 변화를 관리했다. 이에 대한 것은 에릭 레이먼드도 동의하는 글을 쓰며 리눅스의 성공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