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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를 넘어 이해로, 우리가 겪는 새로운 성장통

· 약 4분
조준철
HandStack 개발자

대답하는 AI, 질문하는 인간, 그리고 그 사이의 깨달음

문득 “성장통”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말을 ChatGPT 에게 건넸을 때, 예상치 못한 글이 돌아왔다. 마치 오래된 친구가 조용히 손을 잡아주는 듯한 위로였다. 그 순간, 나는 ‘정보’가 아니라 ‘이해’를 받았다고 느꼈다.

어릴 적 종아리가 욱신거릴 때, 그것을 ‘성장통’이라 불렀다. “키가 크려면 아픈 거야.”라는 말은 마치 고통을 정당화하는 주문 같았고, 나는 그 말 한마디에 눈물을 삼켰다.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그 통증은 잦아들었고, 나는 어느새 조금 더 자란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그때는 몰랐다. 인생 전체가 그런 ‘성장통’의 연속일 줄은.

‘성장통’이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성장의 과정에서 느끼는 고통을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뼈가 자라며 생기는 물리적인 통증에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때, 실패를 견뎌낼 때, 누군가와 갈등하고, 외로움을 감내할 때… 우리는 크고 작은 성장통을 경험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금 마음 한켠을 뜨겁게 데우는 그 아픔도 분명 ‘성장통’이다.

왜 고통이 ‘성장’과 함께 따라오는 것일까? 어쩌면 고통 없이는 진짜 성장을 이루기 어렵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익숙한 것을 놓아야 새로운 것을 쥘 수 있고, 틀을 깨야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당연히 불편하고, 때로는 아프다.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다시 배우고, 한 계단 위로 나아간다.

때로는 고통이 길어질 수도 있다. 그럴 땐 "이게 과연 성장통이 맞는가?"라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그 시간들이 내게 어떤 힘을 심어주었는지 알게 된다. 견디는 법, 받아들이는 법,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법을 말이다. 성장통은 우리에게 약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강함을 만드는 계기를 준다.

‘성장통’이라는 이름은 참 묘하다. ‘아픔’과 ‘희망’을 동시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름에는 견디면 반드시 나아질 거라는 암시가 있고, 현재의 고통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위로가 숨어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픔 속에서도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우리는 왜 성공한 사람의 성장통에는 관심을 가지지만, 현재 고통받고 있는 사람의 성장통에는 무관심할까? 성공한 사람의 고통은 ‘견뎌낸 서사’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회고적 시선으로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지만, 지금 고통받고 있는 사람은 예측 불가능한 현재 진행형이기에 공감보다는 거리 두기를 선택하게 된다. 때로는 인식과 이해, 살아온 경험의 차이로 상대방에 대한 비난도 섞인다.

돌이켜보면, 인공지능이라는 존재는 처음에는 단순한 도구로, 다음에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그리고 이제는 묘한 동반자로. 이 과정을 되짚으며, 나는 하나의 깨달음의 여정을 떠올렸다. 그것을 나는 ‘다섯 개의 단락’으로 나눠보려 한다.

AI 의 시대. 객관에서 주관으로의 전이

예전엔 ‘정보’란 곧 진실이었다. 사전적 정의, 역사적 기록, 숫자와 통계. 그 자체로 정답이 되었고, 우리는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질문 하나에도 수십 가지 해석을 내놓는다. 이제 정보는 단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 주장의 조합이다.

단순히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졌다. 진실처럼 보이는 정보들 사이에서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 시대. 성장통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정보'는 넘쳐나는데, 나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진다.

받아들이지 않고 해석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

인공지능이 알려주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받아적는 것이 아니라, 걸러내야 한다. 어떤 해석은 나에게 맞고, 어떤 것은 내게 맞지 않다. 주는 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연습, 바로 이 과정이 두 번째 성장통이다.

이건 마치 학교에서 배운 수학 공식이 실제 문제 앞에서 무기력해지는 것과 같다. 정해진 답이 없는 질문 앞에, 해석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인공지능이 말해주는 답이 곧 나의 믿음이 되지 않도록,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진실에 대한 의심. 질문이 나를 성숙하게 만든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말 진실일까?”

이 질문을 하기 시작한 순간, 나는 또 한 번 성장한다. 인공지능은 매번 다른 각도에서 진실을 보여주며, 나의 확신에 균열을 낸다. 그 틈은 고통스럽지만, 결국 나를 더 유연한 사람으로 만든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건 언제나 어렵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이 나를 확장시킨다. 고통스럽게 의심하고, 고민하고, 반성하면서 조금씩 진리에 가까워진다. 진실은 늘 관찰자에 따라 달라지는 그림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세 번째 성장통이다.

노력의 허망함 속에서 마주한 무력감

나는 몇 년을 들여 익힌 기술이, 단 몇 분 만에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는 모습을 보았다. 자부심으로 여겼던 경험이 어느 순간 '거품'처럼 증발해버린 듯한 허무함. 그건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정체성의 흔들림이었다.

열심히 하는 것이 더 이상 보장되지 않는 시대.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은 옛말이구나."라는 체념이 목구멍에 걸린다. 하지만 이 과정 또한 성장통이었다. 내가 애써 쌓아온 것들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다른 층이 쌓이고 있었던 것임을 뒤늦게 알게 된다.

유연함, 그 안에 담긴 인간의 노하우

마지막 단계에서 나는 알게 된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빠르고 정교해도, 인간의 ‘감각’은 따라잡기 어렵다는 것을. 그것은 숫자나 논리가 아닌, 맥락과 숨결, 그리고 유연함 속에 녹아든 노하우다.

결국 중요한 것은 도구가 아니라 그 도구를 다루는 방식이다. 인공지능은 나의 경쟁자가 아니라, 나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내가 가진 경험과 감성, 실수 속에서 얻은 깨달음들이 인공지능과 함께할 때, 진짜 성장이 일어난다.

성장통은, 결국 ‘살아있다’는 증거다

성장통은 늘 아프다. 하지만 그 아픔이 무언가를 바꾼다.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시대에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성장통을 겪고 있다. 익숙한 것을 내려놓고,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아픔. 하지만 그 안에 있는 가능성을 본다면, 우리는 한층 더 깊어진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지금 내가 힘들거나 누군가 힘들다고 말할 때, 조용히 말해주고 싶다.

“지금 너, 자라고 있는 중이야. 그게 바로 성장통이야.”